줄거리
이 이야기는 여느 연인들처럼 단꿈에 젖어 신혼 생활을 시작한 한 부부에게서 시작한다. 남편의 이름은 월터 모렐, 아내의 이름은 그저 모렐 부인이다. 신혼 시절은 달콤함은 온데간데 없는 집의 분위기. 남편은 광부로 술과 친구를 좋아하고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전혀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들 부부에게는 이미 아들과 딸이 있고 모렐 부인은 세 번째 출산을 혼자 기다리며 우울하게 소설이 시작된다. 모렐 부인은 없는 형편 속에서도 가정을 잘 가꿔나간다. 생활비를 술값으로 탕진하는 남편에게 지쳐 이미 부부로서의 정은 끊어졌고 그녀는 아들들만을 바라보며 삶을 이어나간다. 처음 그녀의 희망은 첫째 아들 윌리엄이었다. 모렐 부인은 그 아들에게서 자신의 삶의 이유를 찾고 같이 호흡하고 숨을 쉰다. 첫째 아들은 어느새 장성하여 릴리라는 한 여인을 만나고 약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윌리엄은 그녀와의 결혼을 두려워한다. 그런 갈등 가운데 집에 잠시 머물던 윌리엄은 옷의 칼라에 긁혀 목과 턱 사이에 염증이 생긴다. 그리고 그 염증으로 인해 죽는다. 모렐 부인은 절망하지만 다시 그녀의 삶의 이유를 둘째 아들 폴에게서 찾는다. 폴은 형의 죽음 이후 어머니와 하나가 된다. 폴은 어머니의 호흡이고 어머니의 기쁨이고 어머니의 모든 것이며 동시에 폴에게도 어머니는 자신의 삶의 거의 전부가 된다. 그런 폴도 장성해 미리엄이라는 여인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정착하지 않고 다시 새로운 여자 클라라를 만난다. 클라라는 결혼을 한 여자였고 남편과 별거중에 윌리엄과 연인이 된다. 그러나 폴은 클라라와도 사랑을 결실을 맺지 않는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폴은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등장인물에 대해
책의 제목 ‘아들과 연인’ 속 아들의 어머니는 모렐부인이다. 모렐부인의 두 아들 윌리엄과 폴의 삶과 함께 모렐부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아들들이 사랑했던 연인들은 아들에 대한 이야기의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 윌리엄의 약혼자 릴리, 폴의 첫 번째 연인이었던 미리엄과 두 번째 사랑이었던 클라라. 그들과의 사랑과 관계의 변천사를 다루고 있다.
인물들의 관계
1) 모렐 부인에게 첫 번째 아들 윌리엄은 어떤 의미인가?
=> 모렐 부인은 남편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 모렐은 우직하게 광산일을 하는 광부였으나 번 돈을 집에 다 가져다주지 않았고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허비하기 일쑤였다. 모렐 부인이 셋째를 임신했을 때 집안에 무심한 남편으로부터 점차 마음이 멀어져 감을 느낀다. 그런 모렐 부인이 마음을 두고 사랑했던 사람은 바로 첫째 아들 윌리엄이었다. 작가는 이 대목에 이런 소제목을 붙였다. ‘모렐을 버리고 윌리엄을 택하다.’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그녀의 마음에는 이제 남편은 없고 아들 윌리엄이 있다. 윌리엄의 성장과 성취는 동시에 그의 어머니의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들 역시 그런 어머니와 애틋하게 의존하는 관계로 자라간다. 모렐 부인에게 윌리엄은 자신의 삶을 다시금 살게 만드는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을 나눌 깊은 관계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모렐 부인은 그런 마음을 지닌 대표적인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처음에는 남편 모렐이었지만 다음에는 아들 윌리엄으로 바뀌었을 뿐.
2) 모렐은 가정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
=> 소설 속에서 모렐은 가정의 중심축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인물로 묘사된다. 모렐 가정을 이끌어나가고 소설의 중심을 구축하는 이야기는 단연 모렐 부인과 그의 아들들의 서사이다. 특히 모렐 부인과 아들들이 어떤 관계 속에서 삶을 살아나가는지를 밀도있게 그리고 있다. 모렐은 그저 가정에 무심하고, 술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마지막 아내의 죽음조차 옆에서 지키지 못하는 남편으로 그려진다. 돈을 벌어오지만 생계를 책임질 정도의 금액도 아니었기에 모렐 부인은 늘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꾸려나간다.
3) 폴에게 모렐 부인은 어떤 의미인가?
=> 작가가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렐 부인은 첫째 아들 윌리엄의 죽음 이후 둘째 아들 폴에게 자신의 삶의 이유를 찾는다. 폴과 대화하는 모습은 흡사 연인과의 애착 관계 이상이라고 보여진다. 폴 역시 어머니에게서 받은 영향력 아래에 있다. 폴은 미리엄이라는 여인과 사랑을 하지만 모렐 부인은 미리엄을 싫어한다. 이유는 미리엄이 폴을 다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모렐 부인은 미리엄과 연애를 하며 폴이 자기 품에서 떠나는 것을 느낄 때 더욱 미리엄을 싫어하고 어머니의 반대는 폴의 연애에도 상당부분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두 번째 여인 클라라는 모렐부인이 반대하지 않는다. 내게는 아주 이상한 지점인데 클라라는 그 당시 유부녀였고 남편과 결별한 가운데 있는 연상의 여인이었다. 그런데 모렐 부인은 미리엄처럼 그녀를 반대하지 않는다. 이유는 폴이 그녀를 끝까지 좋아하지 않고 질려버릴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모렐 부인이 아들들의 연인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태도에서 나는 애착을 넘은 집착적인 성향을 보았다. 그리고 그런 건강하지 않은 집착이 아들들의 인생을 어머니에 대한 건강하지 않은 의존으로 귀결시킨게 아닐까 생각했다. 폴에게 그녀의 어머니 모렐 부인은 정신적 지주이자 자신의 삶의 모든 것과 같았다. 어머니와 폴의 공간에는 다른 그 누구도 끼어들어갈 공간이 없다. 그런 폴에게 연인들의 존재는 사랑하면서도 익숙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변하게 만드는 불편한 존재들이 아니었을까? 결국 폴은 소설 후반부에 클라라의 남편 도스에게 길에서 얻아맞고 앓아누워 집에서 요양을 취할 때 병문안 차 찾아온 미리엄과 클라라 두 연인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절규하듯이 이렇게 말한다.
“난 둘 다 좋아하지 않아요.”
폴이 연인들과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없었던 이유가 뭘까? 왜 그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을 온전히 줄 수가 없었을까? 나는 그 이유가 폴은 자신을 이미 어머니 모렐 부인에게 주었기 때문이라도 생각한다. 그는 모렐 부인에게 구속된 삶이 아니었을까?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 아기였을 때 부모에게 특히 어머니에게 그 삶의 구속된다. 아기의 생존을 위해 그건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장성하여 어른이 되면 건강한 부모들은 아이들을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 그리고 자녀들도 부모로부터 심리적, 경제적 독립을 이뤄 새로운 삶을 새로운 연인과 시작한다. 이를 두고 두 번째 탯줄을 끊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부모는 자녀들을 떠나보내지 못한다. 어쩌면 평생을 그렇게 살아간다. 자녀의 삶과 부모의 삶이 하나가 되어 자녀의 성취가 부모의 성취가 되고 자녀의 행복이 부모의 행복이 된다. 자녀가 결혼을 해도 여전히 사랑이라는 이유로 간섭을 한다. 그러한 지나친 일체됨은 결국 자녀를 망가뜨리는 경우가 많다. 이 소설 속 폴에게도 난 결국 그것이 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 외의 어떤 연인도 사랑할 수가 없는 마음상태. 그게 폴의 현재이다. 어머니는 살아 생전 폴이 자기의 품을 떠나지 않았음을 좋아했을지 모르지만 자녀의 삶은 망가졌다. 그리고 정작 자신의 삶을 지탱해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폴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판단할 수 있었을까? 누구와 사랑을 해야하냐고 물어볼 어머니가 이미 떠났는데 폴은 방황하는 시간을 길게 맞이할 수 밖에 없다.
4) 폴과 미리엄, 폴과 클라라
=> 이들의 관계를 한번 파헤쳐 보자. 먼저 미리엄은 폴의 가정과 가깝게 지내던 이웃의 자녀였다. 이 둘은 어린시절부터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냈다. 그러다가 크면서 서로에게 이성의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어느새 자연스럽게 둘은 연인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폴이 미리엄에게 느끼는 어떤 감정에서 비롯된다. 폴은 미리엄의 사랑에 구속이라는 생각을 한다. 폴의 어머니가 폴에게 들었던 말에서 나는 이것이 비롯되었을거라 생각을 한다. 모렐 부인은 미리엄이 폴을 전부 소유하려고 한다는 말을 폴에게 했었다. 사랑은 언제나 일정한 부분의 구속이 필연적이다. 남자와 여자가 연인이 된다는 것은 다른 그 누구보다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폴은 그런 미리엄의 사랑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책을 읽으며 이 관계가 참 이해가 어려웠다. 내가 봤을 때 미리엄은 비정상적으로 폴을 구속한다고 보기 어려웠다. 폴의 입장에서 봤을 때 너무 종교적이고 정신적인 사랑을 미리엄이 추구한다고 느꼈을지는 모르겠지만 폴도 어떤면에서는 미리엄과 그런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했었다. 그런데 자신을 사랑하는 미리엄을 결국 폴은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다. 그리고 새로운 클라라라는 여자에게로 옮아간다. 클라라는 도스부인이다. 이미 결혼을 했고 별거중에 있다. 그런 클라라에게 매력을 느낀 폴은 그녀와 연인이 된다. 여기서 또 모렐 부인은 또 폴에게 얘기한다. 클라라는 네가 곧 싫증을 느낄거라고. 그리고 폴은 역시나 어머니의 말대로 클라라 또한 온전히 사랑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에 환멸을 느낀 클라라는 다시 도스에게 돌아가고 만다. 결국 소설의 말미 폴은 혼자가 된다.
미리엄과 폴, 폴과 클라라. 여느 연인들 모두 다 그러한가? 서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만 구속되기를 거부하고 외로움을 느끼지만 서로에게 온전히 속하기를 싫어하는 모습. 이해가 안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모든 연인들이 그런 문제들로 다투고 헤어지고 사랑하기를 반복하니까. 그리고 폴의 어머니가 느끼는 감정대로 폴이 결국은 그렇게 되고야 마는 것들이 나는 참 안타까웠다. 미리엄을 모렐 부인이 반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 갔을까? 클라라가 싫증날 거라고 모렐 부인이 말하지 않았다면 폴은 클라라를 온전히 사랑하고 함께 했을까?
인상깊은 묘사
1) 아들과 연인 1권 375쪽 : 「저기 봐」 폴이 미리엄에게 말했다. 「참 조용한 정원이지」 그녀는 검은 주목과 황금색의 크로커스를 보고 나서 고마워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른 이 모든 사람들 속에서 그는 그녀에게 속한 것 같지 않았다. 그는 평소와 달랐고 그녀의 폴이 아니라 그녀의 언어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그녀의 인식 자체를 죽였던가. 그가 그의 다른,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하위 자아를 떠나 그녀에게 바로 돌아올 때에만 그녀는 다시 살아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가 그녀와 다시 접촉하기를 원하면서 그녀에게 이 정원을 보라고 요청했다. 들판에 있는 같이 간 사람들이 답답하게 느껴져서 그녀는 여러 다발의 오므라든 크로커스로 둘러싸인 조용한 잔디밭으로 눈길을 돌렸다. 거의 환희에 가까운 정적의 느낌이 그녀를 휘감았다. 그녀가 그와 단둘이 이 정원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저자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는 이렇게 폴과 미리엄이 같이 있는 장면을 묘사했다. 미리엄은 폴이 거의 전부인 여자였고 폴이 온 마음과 정신으로 자신에게 속하기를 원한다. 그녀의 관심과 삶의 에너지는 온통 폴에게 있다. ‘남자가 온통 여자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위와 같이 자세하게 섬세하게 묘사를 한 것이다. 이런 장면들이 종종 나온다. 저자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의 글에 대해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평한다. ‘아들과 연인은 로렌스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단 하나의 낭비도 없는 단어와 너무나 자연스럽게 흐르는 감각. 문장 하나하나에 숨겨진 의미는 나의 영혼을 전율시킨다.’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의 미묘한 감정을 저런 묘사로 표현할 수 있다니.
2) 아들과 연인 2권 289쪽 : <그녀는 바닷가의 모래 한 알처럼 사라졌어.... 그저 바람에 이리저리 불리는 응집된 작은 알맹이이고...조그마한 흰 거품이고... 이 아침의 대기 가운데 거의 아무것도 아닌 존재지. 그녀가 왜 내 마음을 빼앗는 것일까.> <장대하고 영원하고 아름다운 해변의 아침이 있어. 저기에는 초조해하고 언제나 만족하지 못하고 거품 방울처럼 일시적인 그녀가 있지. 결국 그녀는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거품 방울이 바다를 의미하듯이 그녀도 무언가를 의미하겠지. 그러나 그녀는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녀가 아냐....>
=> 폴은 바닷가에 들어가 점처럼 작아지는 클라라를 바라보며 위와 같은 생각을 한다. 온전히 클라라를 사랑하지 않았던 폴의 독백과도 같은 생각이다. 폴은 미리엄과 클라라 모두를 사랑할 수 없었다. 사랑하지 않았다. 그에게 인연이 따로 있었던 것일까? 서로에게 완전히 속할 수 없었던 관계의 답답함과 클라라의 존재에 대한 폴의 고뇌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총 감상 및 서평
예전 우리나라에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아들만 애지중지하고 딸은 천대하던 집안의 이야기였고 그 딸의 수난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소설은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과 관계, 그리고 그것이 아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아들들이 연애를 하면서도 여전히 뒤에서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어머니의 눈빛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때로 모렐 부인은 웃고 때로는 우울해진다. 그리고 아들들 또한 그런 어머니의 감정과 생각을 무방비로 노출되고 영향을 받는다.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난 그녀의 아들들이 그녀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조율하고 그것에 맞춰 살았다고 생각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무엇인가?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변함없이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자녀들은 그 사랑에 뿌리를 박고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어낸다. 모렐 부인의 연애 간섭에 대해 지나치다고 생각하다가도 나에게 적용하면 이해가 간다. 나에게는 중3딸이 있다. 그 아이에게 지금은 미래를 준비할 때니까 연애는 지금 하지 말고 대학에 가서 하라고 말을 하는 나는 모렐 부인보다 덜하다고 할 수 있을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면 모렐 부인은 참으로 평범하게 아들을 사랑했던 엄마에 불과했을 뿐이다. 나도 엄마로서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순탄하지가 않다. 자식의 말 한마디에 널뛰기를 하는 내 모습을 본다. 딸의 삶과 나의 삶을 분리하려고 해보지만 참 쉽지가 않다. 이렇듯 미묘하고 섬세한 인간의 관계와 감정들을 순간순간 잘 잡아내고 인물의 마음을 마치 돋보기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도록 표현한 저자의 솜씨에 감탄하는 책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