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사랑에 대하여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리뷰)
1. 책의 목차
-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 스펙트럼
공생 가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대하여
2. 저자 소개
겉표지를 들추면 앳된 외모의 작가 프로필 사진을 만나게 된다. 멜빵바지를 입고 새초롬하게 옆을 바라보는 시선, 주머니에 양손을 찌르고 살짝 갸우뚱한 고개. 작가의 이름은 ‘김초엽’ 1993년 생으로 올해 29살로 2017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젊은 작가이다.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은 그녀는 과학적 지식을 일반인보다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작가가 되었다. 그녀의 이런 이력은 작품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소설에는 상식 수준의 과학 지식을 뛰어넘는 과학이론과 가설 등이 등장하고 그것이 구현된 미래 사회를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그녀의 프로필을 읽고 작품을 읽게 되면 포스텍에서 화학을 배우고 작가가 된 그녀의 선택이 영리하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상상력과 지식을 버무려 그녀가 선물해줄 다음 작품들이 기대된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3. 리뷰
지구 밖의 어떤 만들어진 도시에서 살던 ‘데이지’라는 소녀가 자신의 친구 ‘소피’에게 편지를 쓰며 이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소녀는 행복한 자신의 도시를 떠나 지구로 향한다. 이 글의 제목을 보면 독자는 먼저 강렬한 의문이 생긴다. ‘순례자는 어느 지역의 순례자를 의미하지?’ ‘그들은 어디로 떠났고 왜 돌아오지 않지?’ 이러한 질문을 풀어가는 형식이 흥미롭다. 데이지는 자신들의 도시에서 ‘시초지’라고 불리우는 지구에서 돌아온 한 청년을 만나게 되고 그 청년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하기만 한 자신의 도시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이 도시에 시작에 대해 파헤치며 접근이 금지된 금서 구역에서 그 의문을 풀게 된다.
‘올리브’는 아주 오래전 지구 밖 도시를 떠나 지구로 간 사람이다. 올리브는 아주 오래전 자신들의 도시를 만든 ‘릴리’를 찾아 지구로 떠난다. 지구에서 올리브는 ‘델피’라는 사람과 친구가 된다. 올리브의 얼굴에는 얼룩 같은 무늬가 있었고 지구 사람들은 그 올리브의 얼룩을 특이하게 취급했다. 그런데 유일하게 델피는 얼룩을 지닌 올리브를 특이한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 델피가 살던 곳은 도시 외곽으로 오늘날의 빈민가 같은 곳이다. 도심의 중심지에는 ‘신인류’가 산다. 오래전 릴리의 유전자 연구와 배아 개조 연구의 결과물로 태어난 신인류. 그들은 도심의 중심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살고 신인류가 아닌 사람들은 도심 외곽으로 떠밀려 남루한 삶을 살아간다. 이 곳에서 올리브는 자신이 살던 행복한 지구 밖 마을을 만든 릴리가 지구에서 어떤 일을 했으며 왜 그 마을을 만들었는지 알게 된다. 릴리는 신인류 생산 중 자신을 쏙 닮은 아이 ‘올리브’를 생산한다. 그런데 올리브에게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릴리 자신의 가지고 있던 유전병을 올리브가 갖고 태어난 것이다. 릴리는 자신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어서 기계 속에서 성장 중인 올리브를 냉동시키고 결함을 가진 사람들이 그 존재를 부정받지 않을 만한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 그리고 지구 밖의 그 마을을 만들게 된다. 그 마을은 어떤 결함이 있어도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 행복만이 가득한 마을이었던 것이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올리브는 다시 그 마을로 돌아와서 ‘순례’라는 전통을 만든다. 성인이 되기 전에 그 마을의 사람들은 반드신 한 번은 그곳을 떠나 ‘시초지’라고 불리는 지구를 방문하는 것이다. 지구에 남기로 하는 사람들도 있고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올리브는 다시 지구로 돌아가 그 마을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생을 마감한다. 올리브는 자신을 생산한 엄마였던 릴 리가 만든 ‘신인류’로 인해 피폐해진 지구의 모습을 보고 다시 지구로 돌아가 신인류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분리주의를 허물기 위한 일들을 했다고 알려진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소녀 데이지도 지구로 떠난다. 왜냐하면 그곳은 비탄과 고통으로 가득한 그 이상으로 사랑과 행복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구 밖 도시의 사람들은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구로 떠난 순례자들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그들이 맞서는 세계의 아픔을 고스란히 함께 겪기를 원하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4. 작가에게 던지는 질문
사람들은 종종 유토피아를 꿈꾼다. 누군가 전지전능한 존재가 나타나서 이 지긋지긋한 세상을 뒤엎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주기를 꿈꾸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졌을 때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약점과 결함이 있는 것이 아무에게도 문제되지 않고 슬픔과 고통을 느끼지 않는 행복한 세상.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가 아닌가? 그 세상에서 의문을 품은 아이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소설. 그런데 난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작가는 지구 밖의 마을이 ‘행복한’ 곳이라고 설정을 해두었는데 정말 과연 그들이 행복했까라는 의문이었다. 작가도 지구에서의 삶이 고통과 비탄으로 가득해도 사랑과 행복이 더 클 거라고‘데이지’의 입을 빌려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 마을이 정말 행복한 공간이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성간의 관계에서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고 해도 의문은 생긴다. 모든 인간의 행복은 ‘관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떤 대상에 애정을 갖고 헌신하고자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 바로 그런 관계를 포함한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구 밖 릴리가 만든 마을에서 살던 그 사람들은 과연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론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의 설정에 약간의 모순이 있다고 보인다. 사랑하는 관계없이 행복하기 힘든 존재가 인간인데 그 만들어진 마을에서의 행복이라는 설정이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 아닐까?
어쨌든 작가는 그런 설정으로 지구에서의 삶이 고통과 눈물이 뒤섞여 있어도 의미가 있고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고통과 슬픔이라는 감정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그 사람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 됨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사랑하는 존재의 아픔과 고통은 바로 나의 고통과 아픔이 되는 것이다. 인간에게서 이러한 감정을 분리하여 하나의 감정만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정말 이상적인 유토피아가 만들어지는 것이 가능할까? 고통과 슬픔이 배제된 채로 만들어진 그 세계는 진정한 유토피아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안타깝게도 소설 속 신인류와 분리주의로 고통받는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 몸이 건강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피부색과 인종이 다른 자들.... 서로가 서로를 철저하게 분리하고 구분하고 나와 다른 상대를 배제시키려고 하지 않는가? 인류의 역사가 그런 분리주의로 인한 갈등의 연속이 아니었나? 그러나 여전히 그 세계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 ‘사랑’이 그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미움과 증오가 있는 곳에 사랑을.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세계를 먼 미래가 아닌 현재 유토피아보다 행복하고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힘은 바로 그것이다.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