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 인간과 동물의 공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은 우리 인간에게 확실한 유죄 선고를 내린다. 같은 생명체인 동물을 마음대로 해도 되는 권리를 누가 인간에게 주었을까? 인간은 이 땅의 가장 고등한 동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동물들을 파멸로 이끌고 있다. 결국 인간은 그렇게 사라져 버린 동물들과 동일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는 대단한 인류애나 환경 운동가는 아니지만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 한 잔을 아껴 그린피스 같은 동물구호 단체에 후원을 할 수 있다. 강아지를 유기하고 학대하는 사람들을 보며 혀를 차고 손가락질을 할 수도 있다. 길에서 떠도는 배고픈 길고양이게 사료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내가 배고플 때 즐겨먹는 라면과 건강을 지킨다고 먹는 오메가 3 영양제, 매일 마시는 커피로 동물들을 학대하고 죽이고 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육식이 얼마나 환경을 파괴하고 동물들을 잔인한 환경에서 자라나게 하는지를 알고는 있었다. 그럼에도 채식주의자가 되기는 싫었으니까 남들이 다 먹는 육식을 나만 안 먹을 수도 없고 나 하나 안 먹어도 소용이 없다는 핑계로 애써 외면한 진실을 이 책은 나에게 짚어주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동물보호 운동가이다. 전공은 클래식 피아노인데 한국에서 대 학 강사로 지내면서 동물들이 처한 현실을 보고 진로를 바꿨다. 그가 이 책에서 말하는 동물 학대는 육식에서 끝나지 않는다. 육식은 잠깐 서론에서 언급할 뿐, 우리 인간은 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동물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말한다.
먼저,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 길러지는 동물들이 자연과 다른 환경 속에서 파괴되는 현실을 지적한다. 좁고 더러운 환경에서 인간의 시선을 매일 받아야 하는 동물들은 제 명대로 살지를 못한다. 그런 곳의 관계자들은 멸종 위기에 처한 개체수를 보호하고 증가시킨다는 이유를 들지만 동물원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동물들의 수는 거의 없다고 한다. 정신병에 걸린 동물들이 넘쳐나는 동물원의 현실에 저자는 개탄한다. 그리고 동물들을 취미로 사냥하는 사업에 대한 비판을 한다. 아프리카의 사자 사냥, 곰 쓸개를 합법화한 나라들, 뿔이 잘려나가 멸종 위기에 처한 코뿔소들, 상어 지느러미를 음식으로 찾는 사람들에 의해 몸통이 버려지는 상어들, 오메가 3의 재료라는 이유로 가죽이 벗겨지는 하프물범, 산채로 털이 뽑히는 토끼, 사향 고양이 똥에서 나오는 커피를 얻기 위해 학대당하는 고양이들, 라면과 과자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팜유를 얻기 위해 확대되는 농장과 거주지를 잃고 떠돌아야 하는 오랑우탄, 각종 실험에 이용되고 버려지는 동물들, 할랄 식품에 합격점을 받기 위해 산채로 피를 쏟고 도축되는 동물들까지.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앙고라는 장갑이 아니라 토끼의 비명이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루왁 커피는 사향 고양이의 눈물이다.’
유죄 인간
나는 유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 내 손으로 동물을 죽인 적이 없는가? 내가 쓰고 입고 누리는 모든 편의가 다른 생명체인 동물들의 희생에서 왔음을 왜 나는 애써 외면하고 살아가는가? 나의 모든 선택들이 세상에서 아직까지 멸종하지 않고 겨우 겨우 목숨을 연명하는 다른 동물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우리 인간들은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번거롭고 불편해도 이러한 진실에 직면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 책을 읽기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양봉업자의 이야기를 다큐로 제작한 프로그램을 봤다. 일년 농사를 지어 수확하는 기쁨을 다루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딸아이가 지나가듯 이런 말을 했다.
“엄마, 그럼 꿀들은 이 추운 겨울에 뭐먹어?”
나는 화면 속의 양봉업자를 비난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집 양념 선반에도 꿀통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하는 상품과 식품들이 동물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몇 해전 시어머니 환갑을 기념하며 다녀왔던 태국여행에서 관광상품 패키지에 있던 코끼리 트레킹도 그중 하였다. 동물이 처한 슬픈 현실에 대한 이 책은 내가 얼마나 간접적으로 동물을 학대한 인간이었는지를 직면하게 해 주었다. 이렇게 동물들을 딛고 인간들이 생명을 연장하고 편리하게 살아가는 것의 종말은 어떻게 될까? 이 죄를 우리는 멈출 수 있을까?
저자는 말한다. 완전하게 팜유를 먹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식품에 거의 다 들어가니까. 그렇다면 적어도 환경과 동물과의 상생을 고민하는 제품을 골라야 한다고 말한다. 해외여행을 떠날 때도 코끼리를 타고 돌고래를 관람하는 그런 코스들을 선택하지 말고, 샥스핀 같은 요리를 소비하지 않고 동물을 보호하는 일에 더 목소리를 내는 등의 일을 우리는 할 수 있다. 오메가 3 영양제도 식물성 성분을 이용해 생산한 영양제를 선택할 수 있다. 매일 육식을 먹던 사람이라면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일 수 있다. 모피 코트, 오리털 잠바를 입는 대신 다른 재질의 의류를 선택하고 소비할 수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여전히 묻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동물의 사체 위에 우리 인간들이 핑크빛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고 순진하게 믿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최후의 보루 생태계
생물 다양성이 사라져 버리면 생태계는 파괴된다. 꿀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면 식물도, 그것을 소비하는 동물도 생존이 불가능하다. 자연스럽게 존재하던 동물을 학대하고 죽인 그 결과는 결국 인간이 지게 될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해야만 한다. 상품을 소비하기 전에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내가 살아가 지구의 주인공이 오직 인간만이어서는 안된다. 모두가 떠난 지구에서 우리도 종말을 기다리기 싫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