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오랫동안 땅을 지키며 땅에서 생명을 지켜온 농부들이 길을 떠난다. 이 소설은 오랜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도로로 내몰린 한 농부 가족을 따라간다. 땅에서 떨어져 나온, 뜯겨 나온 그들은 더 이상 농부가 아니다. ‘오크’라고 불리는 그들은 이제 이주민이다. 온갖 고생을 겪으며 이동하던 그들은 소설의 끝에서도 여전히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한 상태로 이야기가 끝난다. 이 커다란 이야기의 골격만 보면 참 어둡고 참담하다. 하루 하루의 삶을 전혀 예측할 수 없고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시간들이 내내 펼쳐진다. 가난한 소작농이었던 그들은 농기구 등을 팔아 마련한 약간의 돈으로 이동을 계속하며 목숨을 근근이 이어나간다. 일자리를 찾아 떠났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생계를 이어나가기도 힘들 정도의 척박한 일자리만 있을 뿐이다. 그 일자리도 경쟁하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 때문에 얻기조차 힘들다. 그러는 동안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아주 비가 억세게 부는 밤 샤론의 로즈가 죽은 아기를 출산하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인상깊은 장면들
이야기는 시종일관 절망적이고 고난스러운 상황의 연속이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돈은 며칠 끼니밖에 남지 않았다.. 가진 식량은 조만간 바닥을 드러낼 예정이다. 일자리는 도무지 찾기가 힘들다. 이것은 그야말로 절망이다. 사형 선고를 받아놓은 것 같은 절망감.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그런 상황을 뛰어넘는 아주 흥미로운 장면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장면1 출소자 톰, 떠돌이 멀리, 무직 케이시, 집을 잃어버린 이주자 가족.
톰은 출소 후 고향 집을 찾지만 이미 그들의 집은 폐허가 되고 가족들은 떠났다. 톰은 굶주린 상황에서 옛 고향 친구 멀리를 만난다. 멀리의 가족들은 이미 고향을 떠났고 그만 유령처럼 고향을 지키고 있다. 톰은 몇 끼를 굶어 굶주렸던 상황이다. 홀로 고향에 남겨졌던 멀리는 자신이 잡은 산토끼를 톰, 케이시와 함께 나눠먹는다. 이미 집을 잃어버린 남자. 하루하루 먹을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 그가 주저없이 가진 것을 나눈다. 작가는 이 장면을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내용을 기술했다. 그러나 나는 소설 도입부에 나오는 이 장면부터 충격이었다. 집을 잃고 땅을 관리하는 사람들로부터 매일 쫓기고 당장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길가에 덫을 놓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먹을거리를 나눈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유가가 오르고 식용유 값이 오르는 상황을 피부로 체험하고 산다. 당장 먹을 것이 없는게 아님에도 벌써부터 미래에 대한 근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제는 식용유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상점마다 재고량이 없다는 걸 알게 되고 급한 마음에 동네 마트에서 식용유 네 통을 사재기를 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근심이 있는데 멀리는 두려움이 없었을까? 이 장면을 시작으로 작가는 어려움과 고난에 처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톰의 가족들이 이주를 준비하며 케이시 목사를 함께 데려갈 것인가를 의논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톰의 아버지가 식솔을 더 데려가야 한다는 것에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낸다. 이미 많은 식구가 있고 태울 자리가 있을까하는 질문을 던지며. 그때 톰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튼튼하고 건강한 남자는 절대로 짐이 되지 않아요. 돼지 두 마리랑 100달러가 넘는 돈을 가지고 떠나면서 사람 하나를 먹일 수 있을지 걱정하는 건...”
톰의 가족이 고난에 대처하며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하는지를 이 장면이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장면2 할아버지의 죽음과 윌슨가족
죽음을 코 앞에 둔 톰의 할아버지를 생전 처음 본 윌슨과 새리 부부가 자신의 누추한 천막에 들여 길거리에서가 아니라 천막 안에서 돌아가시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만난 지 정말 얼마 안 된 사람들이다.. 먼저 도로 옆에 천막을 친 가정이 윌슨과 새리다. 새리는 심지어 아프다. 뒤이어 도착한 톰 일행이 짐을 내리는 동안 지친 할아버지를 자신들의 천막에 기꺼이 모시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그 천막에서 돌아가실 것이라 예상까지 하진 못했겠지만. 그들의 호의와 친절덕에 객사를 면한 할아버지는 그렇게 남의 천막 안에서 돌아가신다. 그리고 탐은 고장 난 윌슨과 새리의 차를 고쳐주고 함께 이동을 시작한다. 아주 짧게 ‘고쳐주고’라고 적었지만 그 일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수리에 필요한 부품이 없어서 부품을 사러 이동해야 했으며 그러는 동안 가족들이 헤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탐의 가족은 끝끝내 윌슨 부부를 버려두고 떠나지 않는다. 난 이 장면도 정말 충격이었다. 먼저 병약한 새리가 자신보다 더 병약한 할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매트리스를 내어준 장면이다. 내가 몸이 아프면 누군가를 돌아볼 여력이 나던가? 절대 아니다. 만사가 귀찮고 화가 나고 힘들다. 그런데 새리는 길거리에서 본인도 고장 난 차에 대한 근심, 아픈 몸에 대한 염려를 안고 있는 사람이 손을 내민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자꾸 내 마음의 그릇과 비교가 된다. 이런 장면들이. 이게 가능한가? 내 처지도 별반 나을게 없는데 그 와중에 자신의 무언가를 나누는 이런 행동들이 어떻게 가능하지? 윌슨 부부의 호의는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생존을 돕는 도움으로 다시 되돌아온다. 톰과 톰의 동생 엘은 자동차를 수리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윌슨 부부의 자동차에 본인들의 무거운 짐을 나눠 운반하다가 고장 난 부품을 수리하게 되니 말이다. 도움을 바라고 베푼 선의가 아닌데 결국 커다란 보상으로 돌아온다. 탐의 가족들도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그들을 다시 돕지 않고 떠나도 누가 뭐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늙고 약한 할머니가 있었고, 임산부가 있었다. 돈은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가야 할 길은 한참 남았던 그때에도 자신의 가족을 도와준 윌슨 부부를 끝까지 챙긴다. 땅에서 쫓겨나 땅으로 돌아간 할아버지의 죽음. 죽음이라는 인간의 최고의 절망 앞에서 서로의 삶을 나누는 사람들.
#장면3 휴게소 점원과 트럭운전사들
이 장면은 곁가지와 같은 이야기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이 책은 잠깐 고속도로 휴게소 이야기를 들려준다. 휴게소에 아주 열악한 모습의 남자와 그들의 아이 둘이 휴게소로 들어온다. 그 남자는 아주 싸구려 빵 한 덩이를 사고 싶다고 말한다. 휴게소 점원은 샌드위치용 고급 빵만 휴게소에 있다고 말하지만 그 남자는 자기가 가진 돈이 없어서 계속 싸구려 빵 한덩이를 사고 싶다고 말한다. 그 휴게소도 더 크고 좋은 휴게소에 손님을 빼앗기고 있어 얼마 안 있으면 문을 닫을 수도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휴게소 주방장이 뒤에서 남자의 애원에 가까운 그 소리를 듣더니 그냥 빵을 줘버리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같이 왔던 두 아이들이 사탕을 사고 싶어 하자 원래는 더 비싼 사탕을 그냥 싼 가격에 부르고 판다. 이를 지켜보던 트럭운전사들은 팁으로 싸게 판 사탕보다 더 많은 금액을 놓고 떠난다. 그러자 휴게소 직원이 트럭운전사들은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망하기 직전의 휴게소 사람들이 절망적인 상황의 가족에게 비싼 빵과 사탕을 싸게 판다. 그리고 벌이가 늘 넉넉하지 않은 트럭 운전사들은 그 휴게소에 넉넉한 팁을 놓고 떠난다. 작가는 그렇게 계속해서 절망에 처한 사람들이 더 절망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모습을 그려낸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아주 작은 불빛을 발견하듯이 절망 속에도 피 같은 삶을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장면4 엄청난 폭우 속 출산과 마지막
톰의 가족은 일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복숭아를 수확하는 농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파업을 이끌고 있는 케이시 목사를 만난다. 이 장면 전에 케이시 목사는 경찰관을 친 톰이 다시 감옥에 갈까 봐 그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다녀오느라 헤어진 다음이었다. 그렇게 만난 케이시 목사로부터 노동자들이 함께 소리를 내야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곧 파업을 저지하려는 사람들에게 함께 쫓기다가 케이시 목사는 살해당하고 톰은 그 살인자를 공격하고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리고 톰의 가족이 그곳을 빠져나와 새롭게 목화 따는 일자리를 얻게 된다. 그때즈음 톰의 여동생 임산부 샤론의 로즈가 출산이 임박한다. 그리고 출산이 임박한 그날 엄청난 비가 내린다. 샤론의 로즈가 진통 가운데 있어서 도망갈 수 도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머물던 차량형 숙소가 비에 잠길 위기에 처한다. 그때 다른 노동자들은 도망을 포기하고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둑을 쌓는다. 처절하게 처절하게. 그러나 둑은 무너지고 그 숙소에까지 비가 들이찬다. 그리고 샤론의 로즈는 죽은 아이를 낳는다. 막 출산을 한 딸과 톰의 아버지는 서둘러 높은 곳으로 차를 버리고 피신을 한다. 그리고 한 창고에서 며칠을 굶어 죽어가는 노인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아버지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우는 아이를 보며 톰의 어머니와 샤론의 로즈는 한 가지 결심을 한다. 바로 막 출산을 한 샤론의 로즈가 그 죽어가는 노인에게 젖을 물리며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샤론의 로즈는 이주하는 과정에서 남편과 헤어졌다. 그리고 막 태어난 아이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비는 내리고 잠깐이지만 머물던 숙소와 차는 비에 잠겨버렸다. 아무것도 없는 채로 비를 피해 도망하던 중에 그녀는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젖가슴을 기꺼이 내놓는다. 죽음과 삶. 희망과 절망. 그 경계 어딘가에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아주 비극적인 이주민들의 삶이지만 끝까지 그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공동체 정신을 버리지 않는다.
제목이 말하는 바
분노의 포도. 이 소설은 한 이주민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특정 집단의 부의 축적에 착취당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평범하게 땅을 부쳐먹던 소작농들의 집과 땅이 흉년으로 인해 모두 은행에 넘어간다. 큰 땅을 엄청나게 소유한 대지주들은 그 땅을 호시탐탐 노리는 굶주린 가난한 이주민들에게 분노한다. 그리고 사람을 고용하고 무기를 사서 그 땅을 지킨다. 엄청나게 많이 수확한 농작물은 기름을 부어 태워버린다. 그래야 값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노는 땅이 있어도 아무것도 심을 수 없는 이주민들, 버려지고 태워지는 과일도 채소도 먹을 수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 그렇게 그들의 분노는 영글어간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비를 착취하고 힘을 규합하지 못하게 만듦으로 돈 있는 자들은 착취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려 든다. 그렇게 가난한 자들의 눈빛은 분노를 쌓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케이시 목사로 인해 톰은 함께 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에 그 분노는 아직 터지지 않은 채로 끝이 난다. 미국은 이 소설이 팔리는 당시 대공황의 끝자락에 있었다고 한다. 이 소설 속 이민자의 처절한 모습은 그 당시 독자들에게 어떤 과제를 남겼을까?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들과 자녀들이 겪고 있는 이 생활고 문제와 가난이 자신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
오늘날에도 사회 빈민층이 있다. 여전히 약자로 존재하는 노동자들도 많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가난하게 태어나서 가난하게 살아갈 뿐이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열심히 일해도 이 사회 시스템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것을 쉽지 않다. 부는 탐욕스럽다. 더욱 많은 부를 원하고 돈을 흡수한다. 사람들의 돈을 빨아먹고 그들의 생명을 갉아먹는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그 시스템에 저항도 해보지만 역부족이다. 부패한 경제 세력과 결탁한 정치 세력은 약자를 위한 법을 만들지 않는다. 여전히 조악한 환경에서 일하다가 젊은 실습생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아무도 책임지려는 사람은 없다. 나는 지금 밥 세끼를 먹고 있다고 해서 그들보다 나은 형편이니까 괜찮다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갖기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소설 속에서 평범하게 땅을 가꾸던 농부들이 은행의 빚에 떠밀려 이민자가 된 것처럼 우리의 삶도 위태롭지 않은가? 언제 표류해도 이상하지 않은 서민들의 삶. 이것이 개인의 문제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국가의 제도가 그런 서민들의 삶을 보장하고 뒷받침해 줄 장치를 만들어 내야 한다.. 우리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다. 세계 속에서 예전과 달라진 위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선진국이라면 소외되는 약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묵과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반드시 분노의 포도로 영글어 가 이 사회를 좀먹을 것이다. 톰의 마지막 결심처럼 약한 서민들은 분연히 일어나 우리의 소리들을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