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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뭐하다 왔니?] 책 작가를 말하다, 첫 선교지, 나의 상태

by 공주삼남매 2024. 2. 5.

선교사의 모습을 잔잔하게 담은 책

작가를 말하다.

작가 이은상씨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이력을 가지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위로 올라가는 이력 구조를 지닌다고 하면 이분은 거꾸로 아래로 내려오는 이력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도 누군가에 의해, 환경에 의해 내려오는 구조가 아니라 본인 자의로 아주 잘 나가던 직업을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의는 아니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새로운 인생을 택했으니 말이다. 저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포모나캠퍼스 국제개발 처장으로 부임하고 있었다. 읽는 직책만으로도 뭔가 있어 보이는 자리가 아닌가? 그러던 중 남편과 한국에서 열린 세계 환경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게 된다. 저자에게 주신 많은 좋은 것을 가지고

너는 무엇을 하다가 왔니?”

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저자의 삶은 완전하게 바뀌게 된다. 그런 음성에 저자는 완벽하게 기꺼이 순종하는 길을 택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던 직장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에 선교사로 가게 된 것이다. 한참 성공 가도를 달리던 사람이 한 지역에 머무는 선교도 아닌 그때그때 응답을 따라 오지로 오지로 가는 선교를 감당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작가의 이력은 참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움을 자아낸다. 하나님의 그 음성이 얼마나 큰 의미였길래 주저함없이 누리던 모든 유익을 저버릴 수 있었던 것일까? 저자를 설명하는 글을 읽으며 든 생각이었다.

 

 

첫 선교지

저자는 원래 성격은 깔끔한 것을 좋아하고 추위를 싫어한다. 그런데 선교지로 나가게 된 곳들은 저자가 싫어하는 그런 곳들이다. 첫 선교지는 몽골이었다. 몽골은 아주 추워서 소변을 보자마자 얼어 붙는 그런 곳이다. 그런데 저자는 불평과 불만으로 그 상황을 견뎌내지 않았다. ‘원래 나는 그런 것을 어려워하지만 주님께서 부르시니 기꺼이 순종하고 나아갑니다.’ 이런 생각으로 저자는 선교지를 감사함으로 누빈다.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온전한순종이 이런 삶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다. 얼마나 성령님께 붙들림바 되면 이런 감사가 가능한 걸까? 나는 감사와 불평 그 어딘가에 있다. 금요일에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할 때면 은혜가 있어서 내가 받은 은혜들을 헤아리게 된다. 나는 자상한 남편도 있고 사랑스러운 두 딸과 아들도 있다. 신앙으로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이 있고 나와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도 있다. 집도 있고 차도 있다. 따지고 보면 없는게 없다. 그런데도 삶에서 시시때때로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는다. 남편의 월급이 적다고 투덜거리고 사춘기 아이들이 공부를 해도 해도 너무 안한다고 투덜거리고 물려받을게 전혀 없는 친정과 시댁의 경제적 상황을 보며 또 투덜거린다. 이렇게 나는 감사와 불평의 어느 중간에 서있다. 그런데 저자는 내가 볼 때는 감사할게 전혀 없어보이는 곳에서 감사를 찾고 있다. 

 

나의 상태

나의 삶은 어떤가? 직장에서 조금만 일이 몰려 피곤해도 불평을 늘어놓기가 일쑤다. 집에서 자녀들이 내 계획대로 따라주고 순종하지 않을 때도 짜증 섞인 말을 한다. 남편이 힘들다고 하면 난 더 먼저 낙담하고 더 빠르게 실망해 버린다.. 어떤 시련과 풍파가 닥쳐도 감사를 외치기는커녕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기에 아주 특화되어 있으며 준비되어 있다. 그게 나다. 나도 20대 대학생때 그랬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참 힘든 상황에서도 주님을 붙들었던 때가 있었다. 하나님의 복음을 가르치고 전하는 일이 가치 있다고 느꼈고 참 배고프던 시절이었음에도 내가 가진 푼돈을 쪼개 후배들을 먹이고 성경을 가르치며 감사했었다. 지금처럼 푹신한 메트리스 침대가 아니라 얇은 홑이불 하나 깔고 친구들과 포개어 잠을 자도 괜찮았다. 내 친구들이 좋은 직장을 가지고 사회로 나가는 것을 보고도 난 복음을 전하는 삶이 정말 감사했고 괜찮았다. 그런데 언젠부터였을까? 내게 그런 감사가 사라진 것이. 아주 깊은 절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도 하나님을 원망한 적은 없다. 그러나 확실히 전보다 메마르고 건조해졌다. 어제 만났던 하나님을 붙잡고 어제 했던 헌신으로 만족하며 추억이나 떠올리며 살 것인가? 아니면 오늘 만난 하나님을 찾고 새로운 오늘을 살아갈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책 리뷰, 나의 경험

그러나 감사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안개처럼 뿌옇다고 느껴졌고 내 삶은 주님과 복음을 위한 헌신의 대가로 남들보다 뒤처져 있었고 순탄치 못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사소한 일상 속에서 주님의 나를 향한 섭리를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마치 나 혼자 힘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7년 가까이 된 것 같다. 그런데 이 저자는 아무런 감사의 조건이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감사를 하고 있다. 충분히 맡겨주신 일도 팽개치고 도망치고 싶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순종하고 있다. 마치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세상 풍파야, 고난아, 어려움아 나를 덮쳐봐라. 내가 꼼짝할 것 같으냐!”

 

하나님과의 동행

저자에게는 하나님께 순종함이 인생 최대의 기쁨이었고 감사였던 것이다. 그들의 순종으로 인도에도, 중국 차마고도 끝에도, 아프리카 스와질란드 고지대에도 복음이 전해졌다. 그들은 그렇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말한다. 세상이 줄 수 있는 기쁨은 아닌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선물이 있을까? 주어도 주어도 마르지 않으면서도 받는 이들에게 생명과 소망을 주는 선물. 나는 알고 있다. 나도 그것을 소유하고 있음을. 그 선물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메마른 뼈들에게 생기를 부으시는 이름, 죽은 자를 일으키시고 병든 자와 약한자를 고치는 그 이름, 절망 가운데 소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르시는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 나도 그 이름을 소유한 자이다. 그런데 나는 어찌하여 그 선물을 내 안에만 가둬두고 살까? 주어도 주어도 닳지않고 더 풍성해지는 그 이름을 나는 왜 전하지 않고 있을까? 꼭 외국으로 나가야 선교일까? 내 주변에도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많고 그렇게 절망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데 어찌하여 난 이 선물을 들고만 있는 걸까?? 내 삶이 그분의 이름을 전하기에는 여전히 부끄럽다고 느끼는 것도 있을 것이고 성령님께 충분히 사로잡혀 살지 못함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일을 처리하는 것에 급급하고 집에서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녀들과 삶을 통제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바쁜 내 모습. 왜 난 그 선물은 나누지를 못하고 살아가는가? 복음의 힘을 충분히 믿지 못하는가? 내가 그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잠겨 살지 못하는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내 삶이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다. 남들보다 잘 사는 것 같지가 않고 내 안의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삶과 별개라고 느껴진다.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힘들고 똑같이 지친다. 어쩌면 그들이 나보다 더 잘산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럼 내 안의 예수님은 그들에게 받아들여질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역경중에 감사

나중에 저자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남편을 보내는 장례식장조차도 복음 전파의 도구로 활용한다. 아픔안에 침몰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서 역사하시는 분을 바라보기에 가능한 일이다. 평생을 이 땅에서 동거동락한 사람과의 이별의 아픔은 말을 해 무엇하랴. 얼마나 아픈 일이었을까? 그러나 작가는 그와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알고 이 땅에서 본인이 완수할 사명이 있음을 명확히 알고 있다. 그리고 남편의 장례를 통해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을 기도하며 실제로 그렇게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의 제목은 너 뭐하다 왔니?’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물으실 것이다. 내가 준 재능과 시간과 체력, 모든 환경을 가지고 뭘 하다 왔는지 정확하게 묻고 답을 들으실 것이다 그 어떤 우리의 삶도 그분의 사랑에 비하면 충분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더 많이 부끄럽지 않도록 삶을 거룩한 일에 소비하며 살고 싶다. 내 나이는 어느새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가끔씩 죽음에 관해 생각한다. 그리고 만나게 될 그 분. 그 분 앞에 서게 될 날을 떠올린다. 그리고 나의 오늘 하루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만들고 있는가? 여전히 내 안에는 부족함이 많다. 죄가 많다. 그래서 그걸 발견할 때마다 무너지는 것 같은 좌절감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분의 손안에 있음을 알기에 감사로 나아간다. 반드시 그분을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