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목이 내게 주었던 첫 느낌
‘고도를 기다리며’ 나는 이 제목을 보면서 비행기가 이륙이나 착륙을 하기 위해 필요한 어느 정도의 높이에 도달하는 그 고도를 기다린다는 말인줄 알았다. 그래서 처음 제목을 보고 ‘비행에 대한 내용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고도는 비행을 위한 높이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 이름이었다. 영어로는 Godot. 그러니까 나는 아주 헛다리를 제대로 짚은 것이다. 어찌됐건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분량이 적어 앉은자리에서 금새 다 읽을 수 있었다. 민음사에서 나온 이 책은 158쪽에 불과한 연극 대본이다.
2. 책의 줄거리
책에는 소수의 등장 인물이 나온다. 에스트라공, 블라디미르, 포조, 럭키, 소년 이렇게 5명이 전부다. 배경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시골길이다. 배경도 이것이 전부다.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이야기를 나누며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중간에 포조라는 사람과 그가 노예처럼 데리고 다니는 럭키라는 인물이 그들에게 두어 차례 잠시 다녀간다. 그리고 고도가 보냈다는 한 소년이 고도가 내일 올 거라는 전갈을 전하기 위해 잠시 들른다. 이것이 전부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단순한 줄거리로 책 한권을 써냈는가? 바로 고도를 기다리는 주인공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나누는 시시껄렁한 대화들로 이 책이 다 채워진다.
3. 고도란 누구인가?
이 책의 등장인물이 계속해서 기다리는 인물이 나온다. 그의 이름은 ‘고도’이다. 왜 기다리는지 그가 누구인지는 전혀 설명이 없다. 그저 하염없이 그들은 고도를 기다린다. 여기에서 많은 관객들과 독자들은 의문을 품는다. 그가 누구길래 등장인물들은 그를 기다릴까? 그리고 그는 언제 올 것인가? 혹자는 고도가 신을 의미한다고 추측하기도 하고 혹자는 자유를 상징하거나 빵을 의미한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그 정답은 지금까지도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작가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자와 관객의 상상력에 의해 그 정답은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고도가 누구인지 추측하기 위해 이 책에는 아주 조금의 단서가 등장한다.
단서 고도 밑에는 염소를 지키는 일을 하는 소년이 있다.
고도는 그 소년에게 잘해준다.
고도는 염소를 지키는 소년의 형인 양떼를 지키는 소년을 때린다.
고도는 염소를 지키는 소년에게 먹을 것을 넉넉히 준다.
고도 밑에 있는 두 형제는 헛간 마른풀에서 잔다.
이게 전부다. 에스트라공, 블라디미르가 하염없이 기다리는 고도라는 사람이 보낸 소년이 와서 그들과 잠깐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얻을 수 있는 고도에 대한 정보. 도대체 고도는 누구인가? 왜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는가? 그럼 고도가 누구인지를 추측하기 위해 고도를 기다리는 두 명의 상황을 살펴보자.
둘은 고도에게 어떤 부탁을 했다. 딱히 뚜렷한 건 없는 일종의 기도와도 같은 부탁. 혹은 막연한 탄원. 그 부탁에 대해 고도는 좀 두고 보자고 답을 했다. 고도는 맑은 정신으로 의논을 하고 결정을 내릴 거라고 둘은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 자기들은 권리가 없다고 말한다. 이런 내용들을 가지고 추론해 봤을 때 고도는 부리는 사람을 데리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의 부탁을 듣고 고민할 수 있는 정도의 힘이 있는 사람인 듯하다. 데리고 있는 형을 때린다는 것으로 봐서 아주 너그럽고 인자한 사람은 아닐 것 같다. 대충 독자가, 관객이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이정도다. 도대체 그는 누굴까?
4. 이 책의 재미
불확실함에 대한 재미의 요소가 이 책에는 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생각했다. 끝부분에는 고도가 나오나? 그가 누구지? 등장인물의 오랜 친구인가? 돈이 많은 부자라서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인가? 그는 어떤 용모를 가졌고 어떤 대사를 말할까? 그리고 책을 덮으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게 뭐야? 끝났어? 그래서 고도가 뭐라는 거야? 고도는 왜 안나오는거야?’ 열린결말. 그래서 처음에는 책을 덮고 약간 허무하기도 하다. 이해도 안된다. 마치 우리가 어린시절 접했던 이상 작가의 시를 읽었을 때와 비슷하다. 난해하다. 그러면서 오기가 생긴다. 다시 훑어보게 된다. 한번에 납득되거나 이해되지 않음이 바로 이 책의 묘미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계속되는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과 대화들이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 등장인물들은 별로 중요해보이지 않는 행동을 하고 대화를 나눈다. 주머니에 넣어둔 마른 순무를 꺼내 나눠먹는다든지, 약한 나무에서 매달려 죽으려고 시도한다든지, 길을 가던 포조와 럭키와 대화를 나눈다든지. 큰 사건도 없고 단순하게 고도를 기다리며 하는 반복되는 말들과 엉뚱한 행동들에서 독자와 관객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때로는 황당하고 때로는 소소한 재미.
5. 등장인물들과 상황설정 – 포조와 럭키
이 인물들은 왜 등장할까? 나는 여전히 의문이다. 포조는 럭키라는 노예를 개처럼 끌고 다니는 사람이다. 목줄을 채워서 목에 달린 끈을 당기며 명령을 내리고 함부로 대하는 그는 내가 판단했을 때 아주 인간 말종같은 사람이다. 자신이 먹다 던지 닭뼈다귀를 럭키에게 먹으라고 하는 인간. 첫 번째 등장은 포조가 럭키를 다른 곳으로 팔아넘기려 가는 길목에서 만난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고 두 번째 다시 포조와 럭키가 등장했을 때 둘의 상황은 달라진다. 포조는 왜인지 시각을 잃은 장님이 되었고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았던 럭키는 벙어리가 되어 다시 등장한다. 그런데 웃긴건 포조와 럭키는 어제 만났던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고도의 심부름을 했던 소년도 다음날 다시 등장해서는 똑같은 말만한다. 전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채. 마치 이상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 같다. 그래서 이 극본은 시간도 앞뒤가 안맞고 상황도 앞뒤가 안맞는다는 느낌이 드는 기묘한 상황으로 독자와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6. 이 책이 갖는 의미
이 연극 대본을 가지고 연극이 상연되었을 때 연극계에는 엄청난 반향이 일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 연극이 상연되기 이전의 극들은 거의 사실주의 극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으로 부조리극의 장르가 시작된 것이다. 극에서 보여지는 장면이 전부가 아닌 내포하는 의미가 있는 그런 극의 시작이 된 것이 바로 이 ‘고도를 기다리며’란 극본인 것이다. 한달정도의 상영만을 하기로 하고 공연되었던 연극은 300회가 넘게 공연되며 사람들 사이에서 엄청난 이슈를 몰고 다녔다고 한다. 특히 ‘고도’라는 인물이 도대체 누구며 무엇이냐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수많은 추측들과 의문들이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고도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썼을 것이다.” 결국 이 책을 쓴 사뮈엘 베케트 조차도 고도가 누구인지를 몰랐고 규정짓지 않은채로 대본을 완성한 것이다. 이런한 그의 무모하고 실험적인 시도는 연극계의 한 획을 긋고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결과를 낳는다.
7. 총평 및 서평
나는 책으로 글로 이 작품을 만났다. 그런데 만약 내가 연극으로 이 작품을 만났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화가 났을 것이다. 왜 이게 끝이지? 왜 연극을 하다가 말지? 그래서 도대체 고도가 누구라는 거야? 왜 고도가 안나오지? 이러면서 연극이 끝난 객석에 앉아 화를 내고 있을 것 같다. 사실극만이 존재하던 시대에 나온 이 작품은 가히 혁신적이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다양한 장르의 연극들이 있지만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작가의 천재성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 책이 주는 메시지 ‘기다림’은 어쩌면 우리 인생이 모두다 가지고 가는 부분인 것 같다. 인간은 살면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무언가를 기다린다. 새로운 사랑을 기다리고, 인생의 성공을 기다리며, 갈등으로 깨어진 관계에 아파하고 또 다른 만남을 기다린다. 우리에게는 모두다 ‘고도’가 있다. 그 존재가 무엇인지는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